말씀묵상/사사기 묵상

21.09.11 "우유부단함이 위선을 낳는다" (삿 17:1-13)

명슬리안 2021. 9. 1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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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7장 1-13절

우유부단함이 위선을 낳는다


Photo by Egor Myznik on Unsplash

 

사사기 17장 1-13절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8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11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12 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13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INTRO

이것을 선택할까 저것을 선택할까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을 선택 장애라고 불린다.

 

끝내 이런 사람을 위해 짜장면과 짬뽕을 같이 먹도록

짬짜면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짬짜면이냐 짬짜밥이냐

고민하게 만드는 무한 루프에 있다.

 

왜 선택을 못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바로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분명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욕심이 있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은

다 누리고 싶은데 하나만 가져야 하는 아쉬움에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가장 좋은 것, 좋아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마음, 생각을 모르기에 선택을 못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오늘 미가는 어머니의 지갑에 손을 댄다.

은 1100을 훔쳤다.

그러나 저주받을까 겁이 나서 어머니께 이실직고한다.

 

어머니는 이에 대하여 좋을 일을 하겠다고 아들인 미가에게 말한다.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부어....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신상과 여호와?

함께 할 수 없는 단어의 나열이다.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건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신상을 세우겠다는 건지

헷갈리는 말이다.

 

신상의 복도, 하나님의 복도

다 가지고 싶은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가의 이름의 뜻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 또는 '누가 여호와 같은가'

 

이름에도 이것을 할 것인지 저것을 할 것인지 애매모호하다.

 

미가는 더욱 가관이다.

자기를 위해서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어

자기의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으로 삼는다.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임명한다.

 

오늘 말씀은 임명 이야기가 나온 후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를 말한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질서와 율법을 무시한 채

잘되고 복되고 싶은 마음만 가져가려는 간사함이 나타난다.

 

또한 이름을 알 수 없는 레위인이 등장한다.

레위인은 성소에서 섬기는 제사장이다.

성막을 섬기고 성막의 자리가 그들의 자리이다.

그러나 이 레위인은 성소를 떠나

자신에게 더욱 대우를 잘 해줄 곳을 찾아 떠났다.

 

떠난 길에 미가를 만나서

미가 개인의 제사장이 되고 만다.

그리고 미가와 레위인이 함께 하는 집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인간이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소리만 들린다.

 

 

삶으로

하나님을 따르면 복인 것은 알겠는데

좋은 것 둘이 모이면 더 좋은 것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양다리, 문어다리를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복만 필요하다"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1+1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좋은 것만 좇다 보니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도 못하게 되는 실정에 빠졌다.

 

이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구별되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이다.

하나님께 무언가 바라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취하려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순수한 의도로, 하나님이 좋아서 따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예수님과 제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두 마음은 섬김이 되지 못한다.

두 마음은 사실 한마음이다.

"따라야 하는 건 알겠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먼저야"

이 마음이다.

 

놓지 말아야 하는 건 알겠는데

이것 선택하고 있을래

손을 꽉 쥐고 있는 것이다.

 

내가 욕망을 붙잡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따른다면

하나님을 도구화 시키는 위선 속에 있는 것이다.

 

경계하고 그 손을 놓아야 한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흔히 말하는 두 마리 토끼 모두 못 잡는다.

그중 한 마리 토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토끼다.

 

기도

내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내가 되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니다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명확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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