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9장 1-10절
착하고 착하려고 착하기 위해
Liza Summer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욥기 9장 1-10절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3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4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
5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6 그가 땅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리도다
7 그가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도다
8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9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INTRO
교회 생활을 하다가 보면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고 목매는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나 역시도 그렇다.
집단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으로 생각한다.
모태신앙들이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것 같다.
때문에 양면성의 격차가 많이 벌어져 있는 걸 느낀다.
문제가 발생하면 예쁜 말로 자신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돌린다든지
다른 상황 탓, 사람 탓으로 자신의 명예를 보호하려 한다.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고 시인하고
주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인데 말이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욥은 발닷의 말에 대답하고 있다.
발닷의 말에 거부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우스운 인간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정말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
욥기인 것 같다.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 좋아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착함을 인정받으려고, 자신은 바른 사람임을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욥은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고백의 뉘앙스는
찬송을 하거나 일상적인 상황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탄식과 고통 속에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창조물들이 어리석게
대항하고 변론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고통의 출처를 말하고 있다.
고통의 출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욥이 돌려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삶으로
고통은 어디서부터 오고 이유는 무엇인가
이야기는 여기서 다루지 않을 것이다.
끝이 없고 결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인간의 존재에 집중하자
욥이 고백한 것처럼
사람은 항상 변론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행동을 인정하기보다는
인정받으려고 논리를 만드는 데 익숙하다.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본인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합리화하고 변론하는 것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자신들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정당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겸손하게 나아가는 존재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자세다.
잃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오히려 얻는 것이 된다.
우리가 할 것은 변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성을 나타낼 것이고
가장 지혜로운 길이 될 것이다.
기도
항상 겸손하고 의로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집중하는 내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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