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향하고 있는가
누가복음 9장 37-50절
본문 읽기 Reading 누가복음 9장 37-50절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들어가는 말 Intro
교회는 교회 안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밖을 위한 존재인가
교회 생활을 하다가보면
밖을 위한 존재보다
교회 안을 위한 일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Into Text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지 못한다.
그래서 한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찾아간다.
예수님은 당연히 귀신들린 아이를 축귀로
치유시켜 주신다.
예수님께 제자들은 "믿음이 없는 세대"라
꾸지람을 듣게 된다.
이와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다닌다.
제자들은 이 사람을 배척하고 따라오지 못하게 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하지 못하는 일이
제자도 아닌 사람이 하고 있던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제자 요한은 그 사람을 따라오지 못하게 했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명확히 말씀해 주신다.
귀신 쫓은 사람은 제자들을 반대하거나
방해하던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그 능력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도
직분은 다를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선입관이 있어
위치가 있지 않으면
능력을 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제자들의 결과는
오늘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누가 더 큰지, 큰 자리를 차지할지
싸우고 있다.
그들의 관념은 이미 세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귀신 쫓는 사람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본질과 생각하는 마음이 대비를 이룬다.
삶으로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교회에서 하는 반응이 있다.
"코로나로 외부인을 받지 않습니다"
바이러스 감염이라든지
방역이라든지 위험으로 그럴 수 있다.
조심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교회는 교회 다니는 사람만의 공동체인가.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사람이 새로 태어나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교회는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야 한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이유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교회는 본질이 우선 되어야 한다.
교회 밖에서도 역사가 이뤄지며
하나님은 세상을 섬기라고
교회를 부르셨다.
하지만 많은 부분들이
교회는 교회 안에만 생각하는 것이 많다.
행사도, 문도, 문화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직함과 직분으로
갈등도 생겨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이 든다.
직분을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할게 아닌데 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권다툼하는 것과 다른 바가 없다.
기도
본질을 항상 놓치지 지 않는 중심을 주시고
순수한 의도로 주님을 늘 따르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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