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출애굽기 묵상

21.04.14 출애굽기 5장 1-14절

명슬리안 2021. 4. 2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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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5장 1-14절

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3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4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5 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

6 바로가 그 날에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

8 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9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10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바로가 이렇게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11 너희는 짚을 찾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그러나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2 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

13 감독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이르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그 날의 일을 그 날에 마치라 하며

14 바로의 감독들이 자기들이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오늘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말들이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장로들과 같이 바로에게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모세는 아론과 둘만 갔다.

3장 18절 - 제사 사흘 길 가서 예배 드릴 것이니 보내주라고 이야기 했다.

고센 땅에서 시내산은 걸음으로 사흘이었다.

5장 1절에서는 내 백성을 보내라- 명령을 한다. 풀어줘라. 절기를 지키겠다. 기약없는 요청으로 바뀐다.

간청에서 명령으로 바뀌는 장면이다. 모세는 이렇게 강경하게 말한다.

2절 파라오는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이스라엘을 보내느냐 말한다.

생각해보면 어떤 왕이 잘 풀어줄까. 사흘 길과 풀어달라는 차이는

느끼는 거부감이 다르다.

그리고 여호와가 누구냐라는 물음은 그 당시 이집트의 신에 대한 관념으로 이해해야한다.

이집트는 신들이 정말 많다. 그 중에 여호와라는 신이 하나 있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고대사회에서 신들은 인간의 능력으로 신들의 능력이 검증되었다.

예를 들어 전쟁을 해서 그 나라가 이기면 그 나라의 신이 위대한 것이다.

히브리인의 신이라고 이야기하니까 파라오는 무시할 수 밖에 없었다.

히브리라는 뜻은 강을 건넌 사람, 낮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파라오는 무시했을 것이다.

3절은 출애굽 3장에서 지시 받았던 대로 말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4-5절 요구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중요하다.

토시 하나 안틀리고 전해야 했다. 그러나 인간은 말을 그대로 전하지 않는다.

말의 행간을 들어야 정상적인 소통이 된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어린 아이가 싸우면 양쪽 이야기가 너무 다르듯이 말이다.

우리는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당시, 이스라엘이 받은 노역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농사를 짓고 자신들이 할 일을 하고 있다가

어느 날이 되면 벽돌을 굽고 일을 잠깐 했다고 한다.

나름 질서가 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라오가 요구를 듣게 되면 당연히 어떤 반응이 나올까

"이게 감히, 배불렀구만?"

오히려 일을 더 많이 주려 했던게 당연할 것이다.

불만을 품지 못하도록 말이다.

6-9절.

나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소명이다.

그 일은 투쟁이되고 힘든 여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하나님이 애굽왕을 강팍하게 하셨을까.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고난이 오는 것은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편해지면 교회에 오지 않듯 말이다.

왜 10가지 재앙이 필요했을까

고난이 있어야 그제서야 하나님께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고난이 있어야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된다.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편해지면 오히려 예배를 안나오듯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예배를 드린다면서

시청하는 것처럼

가장 약한 백성을 부르셔서 강한자를 치셨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다.

신앙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세상의 본질을 알고 그 안에서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이다.

세상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신앙의 길이다.

누가 주인인가, 내 삶의 누가 주인인가 선포하는 일이 신앙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mHKs6R6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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