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출애굽기 묵상

21.04.10 출애굽기 3장 13-22절

명슬리안 2021. 4. 23.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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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장 13-22절>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우리는 특별한 관계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종교를 보아도 신의 이름을 묻는 종교는 없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름을 물어본다.

모세의 세계관은 이집트 신화관이 있었다.

이집트 종교는 다신교였다.

신이 많았다. 이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 많은 신들 중 하나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이름을 물어본 것이다.

자기가 아는 신들의 이름 중에 있는 신인지.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놀라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אֶהְיֶה אֲשֶׁר אֶהְיֶה ’ehyeh ’ăšer ’ehyeh

 

(여기에 '아도나이' 모음을 따서 붙이면 야훼가 되는 것이다.)

이름은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이름이 붙여지고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은 타자로 인해서 존재한다.

타자가 없으면 존재 하지 못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있으신 분이다.

타자에 대한 의존성이 없으시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다.

다른 신들도 사실 인간이 붙여놓은 이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인 스스로 존재하신다.

영어로는 I am who I am으로 말한다.

직역하면 "나는 나다"이다. 이것은 헬라식 표현에서 온 것이기도 하다.

ἐγώ εἰμι 요한 복음에서 나오는 에고 에이미 "나는 --이다"의 형식으로 읽어볼 수 있다.

요한복음과 함께 읽어보면

스스로 있는 자는 곳 세상의 빛임을 읽어볼 수 있다.

빛이신 하나님으로 우리는 그 빛을 받아 존재하고 살아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고 스스로 만족하시기 대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돕는 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갓난 아이가 부모를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과 같다.

하나님이 말을 걸으셔야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이 표현 하셔야 우리는 그분을 알 수 잇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충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내게 드러내시는 만큼 내가 알게 되는 것이다.

"믿는다"도 조심스럽지만 교만한 것이 된다.

내 의지가 될 경우이다.

우리의 믿음은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믿게 되는 것이다.

함께 신앙생활하는 이들을 보면 하나님을 안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오랜 시간이 다 알게 해준 것처럼 말이다.

알면 알 수록 신비롭고 가늠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다 안다고 단정 짓는지 항상 의문이 들었다.

바로 믿음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이다.

나에서 출발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으로 시작되는 것이 신앙이다.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원도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믿어서, 내가 구원을 받는다면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내가 믿게 되어서 구원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인간은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다.

말을 하더라도 항상 기억 속에서 재해석하는 것으로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왜곡되었는지 모르고 이야기한다.

사실 객관화는 인간에게 불가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진실만을 이야기하신다.

영원하시기 때문에 거짓말이 불가한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주관하시는 자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왜곡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

민수기 23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민수기 23장 19절

우리는 인생을, 앞날을 알지 못한다.

앞날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안다고 이야기할까.

하나님이 내 삶에 드러내실 때마다 하나님의 모습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묘하고 감사하고 행복하지 않은가.

날마다 더 해지는 은혜가 가득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내 안에 가득해지는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양분과 물로 성장하는 것이다.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쌓이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복리로 쌓으라고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복리가 아니라 현재다.

현재 무너지지 않는것

현재 순종하고 풍성해지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신앙이다.

설명되지 않는 것을 살아내는 것이 신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비롭고 아름답다.

과학은 설명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신을 설명하려 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설명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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