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요한복음

[요한복음 19장 1-13절] "자신의 상황보다 측은히 여기시는 예수님" 22.04.13

명슬리안 2022. 4. 13.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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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상황보다 측은히 여기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9장 1-13절


본문 읽기 Reading 요한복음 19장 1-13절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cottonbro 님의 사진, 출처: Pexels

 

들어가는 말 Intro

정말 많이 사랑하면

내가 없어지고 상대방만 내 안에 남는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그러하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다.

그 모습을 우리가 닮게 하셨고

사랑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하신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Into Text

요한복음에서 '십자가'단어는 19장에서만 나온다.

19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과정이

집중되듯, 조명을 받듯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과 빌라도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십자가로 시선이 이동된다.

 

빌라도의 직책인 총독은

정치적으로 늘 외줄 타기 하는 위치였다.

당시 로마에는 약 13명의 총독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언제든지 황제나 원로들에게

작은 빌미로 고소 대상이 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조금이라도 흠이 보이면

정치적으로 퇴출되기 쉬웠다.

 

여기에 유대인들은 20만 명이나 목소리를 내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기득권층은 빌라도를 자극한다.

"당신은 황제의 충신이 아니다, 반역하는 사람이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너무나도 곤란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해소하고자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렸음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빌라도를 측은히 여기셨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숭고하시고 죄 없으심을 알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장 때문에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은 이해하셨다.

 

그를 오히려 타이르며 말씀하신다.

"내가 이 길을 결단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너보다 다른 사람들의 죄가 더 크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의 길로 가길 더욱 자처하시면서

빌라도를 측은히 여기신다.

 

결국 빌라도는 선택을 하고 만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다가 저주받았다는 상징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유대인들에게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저주받은 사람들에게만

행해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저주받기를 자처하셨고

모든 죄를 짊어지기로 결단하셨다.

자신을 스스로 세상의 법정에 서게 하셨다.

 

삶으로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생각하셨다.

십자가에 달리는 과정까지

자신의 자리와 책임으로 곤란해하는 빌라도의 마음까지

만지시는 분이 예수님이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그랬을까.

글로 만나고 마음으로 만나는 이 자리는

내게 울림을 가져다준다.

 

스스로 저주의 길과 죽음의 길을 자처하시는 예수님

어찌 그러실 수 있을까

예수님의 마음이 다가오는 새벽이 되었다.

 

기도

주님과 가까이 가지 못하는 마음 만져주시고 저를 측은히 여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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