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5장 1-16절
내가 전하는 복음이 예수님의 복음, 마음이 맞을까
출처 - 오징어게임과 기독교(스포주의, 뇌피셜 주의) (tistory.com)
욥기 5장 1-16절
1 너는 부르짖어 보라 네게 응답할 자가 있겠느냐 거룩한 자 중에 네가 누구에게로 향하겠느냐
2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3 내가 미련한 자가 뿌리 내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집을 당장에 저주하였노라
4 그의 자식들은 구원에서 멀고 성문에서 억눌리나 구하는 자가 없으며
5 그가 추수한 것은 주린 자가 먹되 덫에 걸린 것도 빼앗으며 올무가 그의 재산을 향하여 입을 벌리느니라
6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7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8 나라면 하나님을 찾겠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9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10 비를 땅에 내리시고 물을 밭에 보내시며
11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12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꺾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시며
13 지혜로운 자가 자기의 계략에 빠지게 하시며 간교한 자의 계략을 무너뜨리시므로
14 그들은 낮에도 어두움을 만나고 대낮에도 더듬기를 밤과 같이 하느니라
15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강한 자의 칼과 그 입에서, 또한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시나니
16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희망이 있고 악행이 스스로 입을 다무느니라
INTRO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불편한 점은 그 안에 그려져있는 기독교의 모습이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기도,
합리화 도구가 되는 말씀,
복음을 강요하는 무책임한 기독교의 모습이 채색되어 있다.
비판하는 것에 속상한 게 아니라
공감되는 것에 비참하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오늘 엘리바스는 욥의 고통에 대해
원인을 죄로 두고 말을 하고 있다.
흡사 우리 기독교의 모습이 지금 이렇지 않는지
생각하게 한다.
"너는 부르짖어 보라"
"나라면 하나님을 찾고, 의탁한다"
고통 속에 있지 않은 자가 고통받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욥이 하나님을 안 찾겠는가.
고난의 원인을 욥이 인식하지 못하는 죄가 있어 그렇다고
강요하고 있다.
관계적인 괴로움과 내 삶의 나태함으로 찾아오는 교만과 같은
죄의 원인인 일들도 있지만 그것은 해결책이 있다.
하지만 이유를 알지 못하는 질병
갑작스러운 고통은 다른 문제다.
그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의 죄 때문에 아픈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말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운 사람을 눌러
자신의 우월감으로 쾌락을 느끼려는 변태와도 같다.
실제로 심리학에서 남을 깎아내리고 계속 비아냥 거리는 사람은
그것으로 성적인 쾌락을 채운다고 하기도 한다.
엘리바스의 말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게도 하지만
엘리바스의 행동을 통해 인간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삶으로
오징어 게임으로 다시 넘어가 오늘 말씀과 비춰볼 때
한 장면이 떠오른다.
마지막 이정재가 게임에서 최종 우승자가 된 후
길가에 묶인 채 버려진다.
그곳에는 "예수 천당, 불신지옥" 외치는 전도자가 있는데
이정재의 안대를 벗겨주고 눈을 마주치며
"예수.. 믿으세요"
이 한마디뿐이다.
이정재는 갑자기 헛구역질하면서 입에서 카드를 뱉는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하는 장면이다.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세요?"라고 묻기보다
"예수 믿으세요"
그리고 듣는 사람의 헛구역질과 456억이 담긴 카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자의 마음속에 예수가 있기보다
예수와 복음을 자신이 특별한 사람, 우월한 사람으로 포장해버린 이의
"예수 믿으세요" 말은 헛구역질 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답을 돈으로 보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값어치 없게 만드는 모습이
교회 안에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강요하는가 전하는가
예수를 느끼게 하는가
기도
예수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전했을 때 따뜻한 사랑의 말이 되는
제가 되도록 도우시고 사랑으로 채워주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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