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욥기 묵상

21.11.15 "관계인가 계층인가, 가족인가 조직인가" (욥 25:1-6)

명슬리안 2021. 11. 1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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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5장 1-6절

관계인가 계층인가, 가족인가 조직인가


Pixabay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욥기 25장 1-6절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3 그의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그가 비추는 광명을 받지 않은 자가 누구냐

4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5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6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INTRO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인가.

기도를 한다면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는가

심판받을까 두려운가 아니면 어떤 마음이 생기는가.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나님께 받을 심판으로 두려워할 존재인가?

 

본문으로 들어가기

빌닷은 욥에게 자신의 하나님 이미지를 전달한다.

빌닷에게는 하나님께서는 마치 군병을 거느리시는 용장으로서 왕의 모습을 제시한다.

강력한 무력으로 다스리시는 모습의 하나님을 말한다.

 

"그가 비추는 광명"

고대사회에서는 위대한 이들을 태양이라 불렀다.

하늘에 떠있는 광명체로 그들의 위엄을 나타낸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태양빛을 피할 수 없으며

모두를 바라보고 있다는 이미지가 있다.

빌닷은 하나님의 권능을 광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빌닷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그리는 반면

인간은 하찮은 존재이다.

인간을 "구더기"로 표현한다.

구더기는 시체와 함께하는 벌레다.

죽어가는 존재와 함께하는 벌레로

인간의 부정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빌닷은 인간인 우리는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으며

말조차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고통이 찾아왔다면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벌레만도 못한 나를 굽히며 엎드려야 함을 제시한다.

 

하지만 욥이 만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

고백하는 모습은 빌닷의 말과 다르다.

욥의 고백들을 보게 되면 하나님과 친밀함이 나타난다.

감정도 표현하며, 침묵을 깨달라고 요청도 한다.

그리고 뜻이 있고 인도해 주심을 고백한다.

부모에게 어린아이가 투정 부리는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하나님을 두려움으로만 바라본다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인간의 존재를 하찮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지으시지 않았다.

왕과 같은 모습으로 우릴 지으셨다.

"정복하라, 번성하라, 충만하라, 다스리라"

모두 왕의 언어다.

 

고대사회에서 신의 형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왕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을 닮게 지으셨다.

 

하나님과 편하게 대화하며

친밀함 속에 예배하는 존재로 지어졌다.

하나님은 우리와 에덴동산에서 공동체를 이뤄주셨다.

 

예수님을 만나면 두려운 하나님은 사라지게 된다.

심판의 하나님이 떠올라 죄로 인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죄가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이제는 심판받을 자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

 

다만 두려울 것은 교만한 마음이 자라나 하나님을 속상하게 하는 것과

죄의 습관에 성령을 근심하게 할 것뿐이다.

 

삶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그의 위엄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영화 이터널스에서 인간 나름대로 신적인 존재의 스케일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인간의 상상력에 국한되어 있는 것뿐이다.

 

최근 내 주변은 하나님을 그릴 때 위엄보다는 친밀함의 이미지를 더 많이 그린다.

친구 같으며 위로자가 되시며 계속 관계하는 하나님이 그려진다.

 

빌닷의 하나님 모습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나님 말이다.

이로써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심판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그 두려움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존경하고 조심하는 경외심과 벌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다르다.

 

경외심은 겸손함을 가져오지만

두려움은 불안을 가져온다.

 

우리가 만나고 교제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려고 오셨다.

불안이 아니라 평안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 겸손함을 늘 품으며

친밀함을 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힘입어 늘 승리하는 내가 되어가자.

 

기도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내가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으로 평안을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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