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욥기 묵상

21.11.06 "떠나 있어도, 풍요로움에도" (욥 19:21-29)

명슬리안 2021. 11. 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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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9장 21-29절

떠나 있어도, 풍요로움에도


Pavel Danilyuk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욥기 19장 21-29절

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2)마음이 초조하구나

28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29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INTRO

뉴스의 이슈들을 보게 되면

한 유명인의 사건에 정황과 사실을 알기도 전에

우리들은 심판대에 그 사람을 올려놓는다.

 

온갖 비난을 다 쏟아내다가

사실과 정황이 드러나게 되면

태세 전환을 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우리는 사람들을 심판하길 좋아하는

죄성이 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욥은 친구들에게 정죄가 아니라

동정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고

마음을 같이 하기를 바라고 있다.

 

욥의 상황에 대한 해석과 정죄가 아니라

마음을 같이 해달라 말하고 있다.

 

욥은 친구들에게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박해하느냐"

말하며 호소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심판대에 올리는 일을 많이 한다.

앞뒤 정황과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고

어떤한 단면적인 것만 보고 그 사람을 심판대에 올린다.

 

이해보다는 그 사람의 악해 보이는 모습에 집중한다.

마지 자신이 심판자가 되려고 한다.

그것이 인간의 죄송이자, 교만한 마음이다.

 

하나님 외에 심판장이 되려는 사람은

하나님이 심판장이 되심을 경험하게 된다고

욥은 끝으로 말하고 있다.

 

삶으로

내 안에도 다 알지 못하면서

단편적인 것으로 심판대에 사람을 올리려고 하는 때가 많다.

 

이런 습관으로 하나님께 회심하고 강력한 경험을 했지만

여전히 내게 죄의 습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죄의 습관을 떨치기 위해

나름대로 제어 장치를 만들었다.

 

"나는 그 모습이 없는가?"

항상 질문을 던지면

거부할 수 없는 물음이다.

 

크든 작든 나도 그 모습이 내 삶 속에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가게 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필요한 것은

심판이 아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우리는 공감과 마음을 같이함이 필요할 뿐이다.

 

심판자가 되어

자신은 깨끗한 자라 말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경계해야한다.

 

기도

죄의 습관에 들어가지 않도록 겸손하게 하옵소서

나를 항상 붙들어주시고 주님 마음, 주님 뜻으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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