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해 보이죠?
미련해 보이지만 지킨 본질
당시 십자가의 상징은
박해를 받는 상징이었다.
정치범이나 극악무도한 죄수를
사형하는 방식이 십자가다.
그 십자가를 따르는 일은
박해가 따르는 일이었다.
이 박해와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길은
할례를 받는 일이었다.
할례를 받으면
기독교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 인식했다.
박해를 면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로마는 유대인 신앙을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이었다가 발각이 되면
할례받은 유대인이라 말하면서
박해를 피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는
콘스탄티누스의 칙령 전까지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의 경계가
애매모호했었기 때문이다.
(참조 p.250)
어쩌면 할례는 지혜로운(?) 방법일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면 바울은 왜 할례를 반대했을까?
할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율법주의를 주장하며
종교적인 혐오, 우월의식, 선민의식을 조장했다.
바울은 이 마음과 싸운 것이다.
모두를 구원하고 그리스도 안에
형제자매가 되는 일에 반하는 일이었다.
유대주의의 문제는
자신은 지켰으니
안 지킨 이들을
격하시키고 혐오하기 시작했다.
집중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지혜다.
할례와 율법이 아니었다.
복음의 본질을 위해 바울은 싸운 것이다.
사서 고생하는 삶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고난과 박해가 따른다.
세상은 실리를 추구한다.
실리를 추구하다 보면
편의와 실용성, 효율, 이익을 생각한다.
본질은 흐려지고
질서는 사라진다.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
말씀하고자 하는 본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십자가를 보자.
십자가는 수치스러운 사건, 혐오의 상징이다.
십자가를 걸고 사는 이는
수치와 혐오를 걸고 사는 일,
자신 또한 박해와 고난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무너진 이미지로
교회 다니는 것만으로
사서 고생하는 길이 열린다.
내적으로도 고난이 시작된다.
내 안에 죄성,
하나님을 필요 없어 하는 마음이
요동치고 전쟁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필요한 마음이
되기까지 고난이 수반된다.
그럼에도 십자가를 드는 이유는
하나님이 필요한 걸
내 영혼이, 내 몸이, 내 정신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회복할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알게 된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나를 얼마나 만족하고
성장하게 하는지를.
적용
내가 선택한 길은 후회가 없다.
손해를 모두 감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지자.
내 안에 죄성과 싸우자.
하나님께 붙어 있자.
나를 흔드는 일, 유혹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자.
혐오와 차별에 대하여 싸우자.
고백
십자가를 선택하는 이유는 하나님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상황에 따라 변하는 나 자신이 있었습니다. 흔들흔들거리는 내 마음을 보신 하나님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하나님과 함께 가길 소망합니다. 그 자리가 고난과 고통이 수반되어도 말입니다. 잘 된 들, 못 된 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일어나 하는 기도>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었습니다.
주어진 하루도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나님이 하실 일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맡깁니다.
하나님 뜻대로 인도하옵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성실함과 진실함, 사랑으로 다하게 도와주십시오.
아침 시간을 보낼 때는
비전을 향해 온전히 쏟게 하십시오.
빈 시간마다 허망하게 보내지 않고 제대로 휴식을 취하게 도와주십시오.
출근해서 일을 할 때는
출처 입력
맡은 일을 충실히 하고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큼 이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이 빛나도록 하게 하십시오.
퇴근하고 이후 일정을 보낼 때는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배가 시킬 일에 집중하고 투자하게 해주십시오.
사람을 만날 때는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히 여기게 해주십시오.
잠들기 전에는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할 것과 성찰할 것을 반드시 확인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가 되게 도와주십시오.
이 모든 열매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갈라디아서 6장 11-18절 >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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