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누가복음

[누가복음 22장 1-13절] "틈의 균열은 분열로" 22.03.17

명슬리안 2022. 3. 17.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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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의 균열은 분열로

누가복음 22장 1-13절


본문 읽기 Reading 누가복음 22장 1-13절

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5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2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13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Johnny Mckane 님의 사진, 출처: Pexels
 

들어가는 말 Intro

한 실험이 있었다.

어느 거리에 차를 세워두고 

창문을 깨뜨려 놓으면 이 차는 어떻게 될지이다.

 

결론은

하나의 균열이 그 차를 부서지게 했다.

균열을 보고 사람들이 함부로 다루기 시작했다.

처참하게 폐차가 되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Into Text 

가룟이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은

이스카리옷(’Iσκαpω)이 "거짓말쟁이"를 의미하는

아랍어 셰카르야에서 파생했다고 보는 견해다.

그리고 히브리어 이쉬 케리옷에서 파생한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케리옷은 유대의 헤브론에서 남쪽 19.3km 가량 떨어진 마을 출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른 견해는 '이스카 리옷'으로 "단도를 품은 자", "붉은 이"등 해석이 있다.

 

아무튼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였고

한 무리의 회계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마음에 균열이 생겼고 틈이 생기니

호시탐탐 노리던 사탄이 그 틈에 들어갔다.

유다는 마음이 지배가 되었고 

예수님의 제자보다 물욕에 빠지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계산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합리화했을지 모른다.

위대한 분이라고 하니 내가 이런 행동을 해도

예수님은 파헤쳐 나오시리라 계산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틈이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항상 노리고 있다.

균열이 생기면 더 큰 균열로 만들어

분열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 

 

항상 내 생각으로 계산하는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생각과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길 정진해야 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을 준비하신다.

가룟 유다의 생각을 다 눈치채시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은 참 아픈 구간이다.

 

마지막이 다가오면

하나하나 정돈하게 된다.

일종에 가게 되는 신호다.

 

그것이 마지막 식사 자리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다.

 

삶으로

마음에 틈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에 틈이 생기면 그 안에 들어올 요소들은 정말 많다.

 

세상에는 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세력이 정말 많다.

틈을 노리며 좌절하기 바라는 것이 사탄이다.

 

내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항상 물어야 한다.

주님의 생각과 마음으로 생명으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내 계산으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우리가 매일 주님 앞에 기도하고 말씀 봐야 하는 이유다.

 

예수님의 마지막 식사 장면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어머니의 우리 집 마지막 방문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바쁘다는 이유로, 불쑥 찾아왔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식사의 자리를 갖지 않았다.

업무 중이었고 그날 사무실 식구들이 오랜 기간 미뤄둔 약속의 자리였다.

 

갑자기 오신 것에 대해서 나는 짜증이 났고

어머니의 마지막 신호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직도 한이 되고 아픈 기억이다.

가족에게 정말 못하는 나를 보고 남은

반성, 후회, 아픈 기억 중 하나가 되었다.

 

예수님의 마지막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한 제자들처럼

나도 마지막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 삶에 내가 가득 차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

 

기도

마음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나를 지켜주시고

언제나 신호를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깨어 있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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